
BIOHAZARD RE:3
분량의 부족이 나쁜 게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바이오하자드 RE:3 리뷰 — 일찍 끝나버린 질주
RE3는 분량으로 욕을 많이 먹은 게임이다. 68,400원이라는 풀프라이스임에도 6~7시간 정도의 플레이타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후 비판을 인식해 가격을 인하했지만, 그럼에도 가격 대비 적은 볼륨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량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단순히 게임이 짧다는 결과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RE3의 분량이 왜 이렇게 됐는지, 그리고 그 구조에서 어떤 경험이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지지 않았는지를 들여다봐야 이 게임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구조의 선택
바이오하자드는 기본적으로 선형적인 서사를 가진 게임이다. 그러나 전작인 RE2와 RE3의 진행은 성격이 다르다. RE2는 같은 공간을 반복해서 돌아오는 구조로, 경찰서를 탐험하고, 지하로 내려갔다가 다시 경찰서로 복귀한다. 같은 복도를 여러 번 지나치면서 공간에 대한 기억이 층층이 쌓이고, 그 기억 위에서 새로운 긴장이 만들어진다.
반면, RE3는 한 번 지나친 곳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시내에서 지하로, 지하에서 경찰서로, 경찰서에서 병원으로, 앞으로만 나아간다. 이 선택이 분량을 결정했다. 한 공간을 반복해서 경험하지 않으니 그 안에서 꺼낼 수 있는 것이 적고, 꺼낼 것이 적으니 게임이 짧아진다. RE3의 분량 문제는 맵의 크기가 아니라 이 구조적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포의 축적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구조가 공포의 축적 방식 자체를 바꿔놨다는 데 있다.
바이오하자드는 공포를 쌓고, 그것과 직면하게 만들고,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을 준다. 카타르시스의 크기는 그 이전까지 쌓인 공포에 비례한다. 전작인 RE2에서 타이런트는 경찰서라는 밀폐된 공간에 플레이어와 함께 갇힌다. 타이런트는 멈추지 않고 발소리를 내며 쫓아오고, 도망칠 수는 있어도 그 공간을 벗어날 수는 없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면 경로를 바꾸고, 멀어지면 다시 움직이고, 문을 열기 전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탈출 불가능성이 경찰서에 머무는 내내 압박을 만들어낸다. 공포의 축적이 길기 때문에, 그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의 쾌감은 단순히 적을 쓰러뜨리는 것 이상이 된다.
하지만 네메시스는 다르다. 게임이 처음부터 시내라는 개방된 환경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이 주는 압박감이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네메시스는 강렬하게 등장하지만, 그 공포는 조우하는 순간에만 존재하고, 정해진 연출 구간이 끝나면 함께 사라진다. 그렇다 보니 이후 강력한 무기로 반격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해소될 긴장감 자체가 부족하다. RE3의 반격 장면이 시원하긴 해도 길게 남지 않는 이유다.
반격자의 감각
그럼에도 RE3의 플레이 감각은 분명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카타르시스가 약해진 건 공포 축적의 문제지, 반격 자체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RE2가 탄약 한 발을 아끼며 복도를 버티는 게임이었다면, RE3는 밖으로 나가 환경을 돌파하는 게임이다.
그 감각의 중심에 질 발렌타인이 있다. 짧은 머리, 과하지 않은 복장, 그럼에도 화면 안에서 분명한 존재감. 배경을 몰라도 이 사람이 한 번 지옥을 겪고 나왔다는 게 태도에서 읽힌다. RE1의 양옥집 사건을 겪고 나온 특수부대원이 다시 총을 잡는 이야기이기에, 게임의 플레이 톤 역시 처음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맞받아치는 사람의 시점이다. 오프닝에서 질이 불길과 좀비가 뒤섞인 거리를 뚫고 나오는 장면은 이 게임의 톤을 한 번에 정립한다. 병원에서 밀려오는 웨이브를 막아내는 구간도, 후반의 레일건도 그 연장선이다. 이러한 반격만으로 RE3는 자신의 몫을 훌륭하게 해낸다.
RE:2의 기억 위에서
RE3가 주는 또 다른 인상적인 경험은 카를로스로 경찰서를 플레이하는 파트다. 이곳은 전작과 구조가 완전히 동일한, 말 그대로 같은 공간이다. 시간상 RE2보다 조금 앞선 시점을 다루기에, 플레이어는 탐험하는 내내 전작에서 목격했던 훼손된 흔적들의 인과를 역으로 확인하며 퍼즐 조각을 맞추듯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심지어 사물함의 자물쇠 번호까지 전작과 똑같아서, 당시의 기억만으로 잠금을 풀어버리는 인상적인 경험도 제공한다.
하지만 이 익숙한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플레이 감각의 완벽한 대비에 있다. RE2에서 억압과 공포의 공간이었던 경찰서가 카를로스의 손에서는 쓸어버리는 사냥터로 뒤집힌다. 이 구간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단지 카를로스의 화력이 강해서가 아니다. RE2에서 코너 하나를 돌 때마다 탄약을 아끼며 조심조심 움직였던 생생한 기억이 플레이어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자물쇠를 열고 똑같은 복도를 지나지만, 이번에는 총탄을 아끼지 않고 돌파하는 그 감각이 단순한 액션 이상이 된다. 오직 RE2를 경험한 플레이어에게만 성립하는 해방감이다.
시리즈 안에서의 자리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의 양이 부족하다는 것이 곧 나쁜 게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쉽다는 말이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하나의 사건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인물들을 통해 전체를 관통하며 이어지는 유기적인 구조를 가진다. 그 흐름 안에서 RE3는 지나가는 구간이고, 바로 다음에는 RE4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정가로 접근하기에는 여전히 아쉬운 볼륨이지만, 잦은 할인으로 가격에 대한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더해진다. 매주 기다려야 했던 드라마가 이미 다음 화까지 공개된 지금, 그리고 가격이라는 타협점이 마련된 현재 시점에서 RE3의 짧은 분량은 더 이상 치명적인 결함이 아니다. 시리즈를 정주행하는 플레이어에게 이는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흐름의 일부가 된다.
RE3는 변주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그 방향에서 공포를 충분히 쌓지 못했을 뿐이다. 돌파의 규모가 조금 더 컸다면, 네메시스와 함께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게임으로 기억됐을 것이다.
